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시노모리 쇼타로 (문단 편집) == 여담 == * 생각보다 근성이 강하여 이틀에서 사흘 정도 밤샘 작업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하며 [[골초]]에 [[커피]]도 엄청 좋아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커피와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문구에 "그럼 팔지 말던가!"라고 투덜댔다고. 또한 그의 만화를 맨 처음 읽어주는 사람은 그의 가족들이었다고 하며 작중 그가 코멘트를 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데즈카 오사무처럼 딱히 작업실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택에서 그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 아내의 말에 의하면, 갈아입으라고 속옷을 갖다주기 전에는 속옷도 갈아입지 않고 밥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생활에는 무심했고, 장남 오노데라 죠의 말에 의하면 언제 잠자리에 드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신이 보기엔 하루 종일 만화만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어시스턴트였던 [[나가이 고]]는 이시노모리는 바쁠 때면 2주 정도는 하루 2, 3시간만 자고 밥도 "가끔" 먹고 화장실 갈 시간 빼고는 원고에 치여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기절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인지 [[사이보그 009]]의 헤이세이 애니판 완결편 3부작에서도 자택에서 HOTEL 원고 작업 도중에 깜빡 잠들었다가 길모어 박사가 깨워서 일어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작가가 이렇게 일하니 어시도 쉴 틈이 없어서 나가이 고는 이시노모리의 작업실에 있을 때 75시간 잠을 못 자기도 했다고. 이래서 이시노모리의 제자들은 모두 속필이라고 한다. * 영화광으로 예술 영화, 오락 영화 가리지 않고 보았으며 바쁘게 살아도 영화는 챙겨보았다고 한다. 영화보다가 누나 죽었을 정도인데 그 정도면 트라우마가 될 법도 하지만 영화는 끊지 못했다고 한다. 존경하는 감독은 [[알프레드 히치콕]], [[구로사와 아키라]]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즐기지 않았으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대단하다." 라고 하며 미야자키의 작품은 좋아했다고 한다. * 동료 작가였던 [[미즈키 시게루]]는 "(데즈카와) 이시노모리는 과로를 해서 죽었다."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나가이 고의 만화 '게키만'에선 보통 만화가의 5배 속도로 만화를 그렸다고 회고된다. 나가이 고는 이시노모리 선생님이 하루에 1~2시간만 자면서 만화를 그려서 만화가는 저렇게 사는 게 당연한가보다 하고 자신도 그렇게 했다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시노모리가 비정상인 거였다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면서도 저러고도 60세까지 산 건 거의 기적이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 [[토에이]]의 프로듀서 [[히라야마 토오루]]와 작업을 자주 같이 했는데 대부분 업무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어느 날 "당신과 사생활이나 인생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같이 온천 여행이라도 가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라고 해서 그러자고 했는데 갑자기 이시노모리의 건강이 안 좋아져서 미뤄졌고 얼마 안 가 사망해서 결국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히라야마는 진작에 이야기 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고 한다. * [[데즈카 오사무]]의 회고록에서는 꽤 털털한 성격이라고 한다. 한번은 데즈카 본인이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결혼식에 참석하려 했지만 일정이 너무 바빠 결국 왔을 땐 결혼식이 끝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데즈카 오사무는 지인의 결혼식은 참석하지 않는 걸로 유명했기 때문에 이는 핑계일 수도 있다. [[나가이 고]]는 "지인들의 행복을 질투하게 될까 두려워서 일부러 안 가는 게 아닐까." 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 뒤 이시노모리 쇼타로 본인은 '''"원래 만화가라는 게 그래. 특히 선생님(데즈카) 정도면."'''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고. * 이렇게 지인들은 그를 털털한 호걸의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이시노모리는 자기는 마음이 매우 여린 섬세한 사람이라고 털어놨다. 어린 시절에는 주변에서 자신의 만화를 알아주지 않았고 만화가라는 미래도 어두워서 고민이 많았고 자신감이 없어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토키와 장]]에 들어가고 걱정을 좀 덜어서 성격이 바뀐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항상 내면에는 여러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도 고뇌하는 주인공이 많이 나온다. 지인 중 [[아카츠카 후지오]]는 그의 이런 면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진지한 만화를 그리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 아들 오노데라 죠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버지가 가면라이더의 디자인을 정할 때 아이들이 좋아할 것을 고르기 위해 오노데라 죠에게 고르라고 했을때 지금의 메뚜기 헬멧 디자인을 골라 가면라이더의 제 2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한다. [[가면라이더 블랙 RX]]에서 조연 [[고로(가면라이더 블랙 RX)|고로]]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가면라이더 SD]]에서는 RX의 성우를 맡았으며, [[진 가면라이더: 서장]]에서는 미야시타 준이치와 함께 각본을 쓰고 아버지와 함께 카메오 출연을 했다. 그리고 [[울트라맨 다이나]]의 [[나카지마 츠토무]]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울트라맨 다이나 최종화에서 한 대사가 가정에 무심했지만 최고의 만화가였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담겨있다는 해석도 있다. * 그의 친손자인 '''오노데라 세이루'''는 [[레이와 라이더]] 최초의 시리즈 [[가면라이더 제로원]]에 등장 인물 [[아마츠 가이]]의 아역을 맡은 적이 있다. * [[마츠모토 레이지]]와 생일이 같다. 둘다 1938년 1월 25일생. 후일 이시노모리가 사망하자 마츠모토 레이지는 [[마이니치 신문]]을 통해 동갑내기 만화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하였다. * 그의 영향을 받은 후배 만화가는 셀 수 없이 많지만, 대표적으로 [[오토모 카츠히로]], [[우라사와 나오키]], [[하라 테츠오]]가 있다. * [[미야기 현]]에는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작품을 소재로 한 전시 박물관인 '이시노모리 만화관(石ノ森萬画館)'이 있다. 이시노모리가 그린 총 9만점의 원화가 있다. [[파일:이시노모리 만화관.jpg|width=400]] * [[스탠 리]]와 비교되는 경우가 많았다. 두 사람은 히어로물을 다수 창작했고 애니메이션보다 실사를 선호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둘 다 자기 작품의 실사판에 카메오 출연하는 걸 즐겼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1978년 스탠 리와 직접 대담하기도 했다.[[https://m.dcinside.com/board/kamenrider/101083|인터뷰]] * [[세이버 + 젠카이저 슈퍼 히어로 전기]] 국내 개봉판에서 조항리라는 이름으로 현지화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전대와 라이더의 창조주의 이름을 현지화해버린 것에 팬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이것이 토에이의 요청에 따른 것인지 대원 측의 임의 변경인지는 불명.[* 전대는 그 전부터 계속해서 로컬라이징을 해 왔고, 라이더는 더블부터 아예 토에이 요청으로 로컬라이징을 해 왔다. 따라서 토에이가 로컬라이징을 요청했을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 없고, 설령 토에이가 별도로 요청하지 않았더라도 전대와 라이더 모두 로컬라이징을 하는데 이시노모리 하나만 원판 이름 그대로 내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극장판에서 어린시절 쇼타로 역을 맡았던 배우 [[스즈키 후쿠]]는 후에 가면라이더 기츠에서 [[진(가면라이더 기츠)|진]] 역을 맡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